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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국가와 기관, 기업들은 구성원들의 건강과 행복에 관심 가져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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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심리적 부검 연세대원주의대 민성호 교수

우리나라는 자살률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다. 이런 가운데 우리 법원이 얼마 전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세무공무원 유족이 제기한 유족보상금지급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사법사상 처음으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고 고인의 자살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이번 재판에서 심리적 부검을 진행한 연세대원주의대 민성호 교수(51·정신건강의학과·사진)의 목소리는 시종 조심스러웠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심리적 부검을 진행한 전문가로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관심을 의식한 때문은 아닌 듯했다. 그는 심리적 부검 과정과 자신이 재판부에 제출한 감정서가 재판 결과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는 "분명히 말하지만" "이 내용을 꼭 기사에 써달라"는 등의 말로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 교수는 "저는 자살예방 사업을 하는 전문가인데 혹시 재판의 결과 때문에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살시도 이유를 업무와 관련 짓고, 쉽게 자살시도를 결정할 것같아 가장 걱정이 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대부분의 자살 원인은 상당 부분이 자신의 성격, 음주습관 등 요인과 가족 및 대인 관계, 경제적 요인 등이다"라면서 "망인의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이번 심리적 부검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제 국가와 기간, 기업이 구성인 개개인을 돌볼 차례"라는 개인 소견으로 답했다. 그는 "못먹고 못살던 시절 우리 국민들은 국가와 자신이 소속된 기관, 기업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희생을 해왔다"며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뤘으니 이번엔 국가와 기관, 기업들이 그동안 소홀히 했던 구성인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심리적 부검이란 뭔가.
"많은 분들이 수사드라마 CSI 등을 통해 신체적 부검에 대해 많이 접했다. 신체적 부검이 사망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신을 해부 및 생화학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이라면, 심리적 부검은 사망 사건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규명되지 않은 경우 또는 자살로 추정되는 경우에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심리적 부검은 크게 2가지로, 이번처럼 재판과정에서 사망자의 자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심리적 부검과, 국가나 지역사회가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보건정책 수립을 위해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역학조사 차원의 심리적 부검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학적 조사 차원의 심리적 부검이 몇 년 전부터 수차 시도됐지만 성공한 경우는 아직까지 없다."

- 심리적 부검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심리적 부검에서 유가족 대상 면담이 큰 부분 차지하는데, 심리적 부검 전문가나 경찰이 유가족을 찾아가면 그 얘기 꺼내지도 말라며 입을 꾹 닫는다."

-세계적으로 심리적 부검은 언제 처음 도입됐나.
"1934~1940년 뉴욕경찰 93명이 연속해서 자살한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는데, 이들의 자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시초다. 이어 1956년 미국 워싱턴대학 엘리 로빈스(Eli Robins) 등이 1년 동안 134건의 자살사건을 체계적으로 조사했는데, 이것이 현대적 의미의 심리적 부검의 시작으로 보면 좋을 것같다."

-이번 심리적 부검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
"지난 여름 한 달 동안 진행했다. 1심 재판부에 제출된 객관적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먼저 이를 자세히 검토했다. 망인의 배우자, 자녀, 어머니 등 가족과 직장 동료 등을 대상으로 10 시간 이상의 면담을 했다. 심리적 부검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핀란드 심리적 부검 연구(1년 동안 1400명 조사)가 평균 2시간 45분 동안 면담을 한 것에 비하면 비교적 심층적인 면담이었다고 생각한다. 면담 내용은 출생에서 사망 직전까지의 모든 내용을 포함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생활기록부 등도 훑었다. "

-심리적 부검이 처음 도입된 이번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 자살간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은 아니다. 저는 단지 이번 사건의 망인의 사망 전 심리를 분석해서 법정에 전문가 의견(감정서)을 제시한 것이고, 2심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서 판결한 것이다. 따라서 판결은 제 권한 밖의 일이고, 판결이 제 개인적인 의견과 꼭 일치하지도 않고 일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심리적 부검 결과 업무 스트레스와 자살의 관련성을 뒷받침할 증거나 근거들은 무엇이었나.
"우리나라 자살자들을 분석해보면 우울증 가장 큰 원인이고 이어 음주, 경제적 이유, 가족 또는 연인 간의 갈등, 충동적 성격 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망인의 경우에는 이런 요인들과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으며, 업무와 관련해서 3개월 전부터 우울증이 갑자기 발병했고, 이 우울증이 자살과 상당한 관계돼 있다고 봐서 재판부가 그렇게 판결한 것이다."

-망자의 업무 스트레스의 양상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망자가 맡았던 업무는 불법유통자료상을 찾는 것으로 형사사건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성격이어서 다른 이들이 꺼리는 일이었다. 또 2과에서 1과로 파견나가면서 인력 충원이 제대로 안돼 7명이 해야 하는 일을 4명이 감당해야 했고, 업무 공간이 부족해 3과에 의지해야 하는 등 소속과 정체성도 분명치 않았다. 세무공무원들이 본청에 갈 경우에는 많은 업무량으로 승진을 기대하는 것이 보통인데 망자의 생각에 여러 불합리한 이유로 여기에서도 기대에 못미쳤다."

-망자의 우울증 양상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여느 우울증 환자에서 보이는 우울한 기분, 식욕저하, 수면장애, 무망감(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기분) 증상이 다 엿보였다. 부인의 말에 따르면 허리 사이즈가 석달 새 34인치에서 31인치로 줄어 들었고 아들과 목욕탕에 가서는 힘 들어 등을 못 밀어주겠다고 말했단다."

-심리적 부검에 임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인 것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단순한 역학조사 차원이 아니어서 부담이 컸다. 역학조사 차원의 부검은 감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해 관계자가 없어 부담이 적은데 이번에는 송사를 다투는 원고, 피고 등 이해 당사자가 있어 보다 정확하고 공정한 감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 한가지, 자살 예방사업을 하는 전문가 입장으로 혹시 재판의 결과 때문에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살시도 이유를 업무와 관련 짓고, 쉽게 자살시도를 결정할 것같아서 가장 걱정이 된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대부분의 자살원인은 상당 부분 자신의 성격, 음주습관 등의 요인과 가족관계, 대인관계, 경제적 요인 등이다. 망인의 경우는 이례적인 사례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심리적 부검이 과거의 일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면담 대상자들이 망자에게 우호적으로 흘러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역학조사 차원에서 하는 2~3분 정도의 면담으론 안 되고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하고 일치되는 내용만 선택해 취합해야 한다. 또 단순히 표면적인 내용 뿐 아니라 심층적이고 무의식적인 영역까지도 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심리적 부검 도입의 의미가 뭐라 보나.
"자살자의 경제적 어려움, 가정 갈등과 같은 평균적인 기준이 아니라 보다 개별화된 감정소견을 가지고 망인을 평가한 것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은 나라와 기업 등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뤘으니, 이제 국가와 기관, 기업은 그동안 소홀했던 구성원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망인의 경우도 직장의 업무와 실적을 위해서, 직원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가 주어졌고, 이로 인해 이미 우울증과 같은 건강의 문제가 발생하고 적신호가 켜졌는데도 직장이 직원 개인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못했다."

-그동안 1000건 이상 자살 사례를 연구해왔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는 뭔가.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자살률은 낮았다. 자살률이 높아진 이유는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적, 진화론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꼴등도 존중받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이에 따라 쉽게 좌절하고 희망을 끈을 놓는다. 가족해체 현상으로 주변의 지지도 못 받고 음주율도 높다. 또 문제가 있으면 치료받아야 하는데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정신병자로 낙인찍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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